미국에 온지 한달이 되었다.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될지 모르겠다.
솔직히 처음에 애임하이로부터 알래스카로 배정되었단 전화를 받았을 때는 정말 당황스럽고 꺼려졌다.
난 여름에도 집에서 엄마아빠가 에어컨을 틀면 춥다하면서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릴 정도로 추위를 많이 타는데 알래스카라니.. 정말 막막했다.
뉴욕 오리엔테이션에서도 다른 교환학생들이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면 알래스카로 간다고 대답할때마다 남다른 반응들이 돌아오는데 그런 걸 들을수록 계속 걱정스러웠다.
어찌되었건 난 지금 정말 알래스카에 와있다.
공항에 오자마자 뉴욕이랑은 날씨가 전혀 달랐다.
뉴욕에서는 반팔에 반바지만 입고 다녔는데 Anchorage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추워서 자켓을 걸치고 긴 바지로 갈아입었다.
10월에 눈이 올거라고 들었을 때 놀랐었는데 하하.. 2주전에 진작부터 눈이 왔다. 9월에 눈이라니!!
생각보다 많이 추워서 엄마가 겨울옷을 보내주기로 했다. 근데 알고보니 알래스카는 ems가 안된다고 ... 그래서 어차피 늦게 받을 거 배로 받는 거랑 비슷할 거 같아서 배로 받으려고 했더니 알래스카는 배가 2달 정도 걸린단다...그래서 항공편으로 패딩이랑 겨울옷을 받아서 입고 다니고 있다.
여기와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처음 왔을 때 내가 여기 1년동안 머무르는게 아니라는 걸 호스트패밀리로부터 들었을 때이다.
처음 3일 동안 학교 등록하고 필요한 것 사러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의 지인들이 만날 때마다 '12월엔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물었고 그럴 때 마다 할머니가 '다른 가족한테 가야지'라고 한는데 난 정말 내가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다.
근데 한 세번 정도 듣고 나니 아..이게 진짜구나 싶어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근데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엄마가 더 놀라셨고 애임하이에 연락해볼테니까 일단 걱정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셨다.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연락을 받았는데 애임하이도 몰랐다고...... 어디서 뭐가 잘못된건지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께 밥먹다가 차근차근 이야기를 꺼냈다.
"12월에 다른 호스트패밀리한테 가는 게 사실이냐. 여기 오기전까지 전혀 몰랐다. 한국에 부모님도 걱정하고 계시고 나도 너무 걱정된다. " 라고 말씀드렸더니 놀라시면서 몰랐냐고 할머니할아버지께서 겨울에 하와이에 가서 지내시다가 따뜻해지면 돌아오시는데 처음부터 코디네이터한테 얘기를 했는데도 상관없다고 그랬다고 한다.
난 상관 있는데... 초반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4개월을 생활하다가 적응해서 잘 살고 있는데 중간에 바꿔서 다시 적응할 걸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이런 중요한 사실을 나와 부모님이 전혀 몰랐다는 거에 대해서 솔직히 화도 났다. 그래도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그냥 코디네이터의 다음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12월에 하와이 가시기 전에 먼저 가서 집 수리하고 할 일이 있으시다고 먼저 가버리셨다.
할아버지 완전 좋은데ㅜㅠ 젠틀하시고... 물론 할머니도 좋은 분이시지만 가끔...아주 가끔.. 좀 그렇다.
내가 가장 많이 할머니한테 잔소리 듣는 건 '물 사용'이다.
한국에서는 세면대가 젖어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근데 할머니는 그걸 용납하지 않으신다.
세면대가 젖지 않게 물을 약하게 틀어서 사용하라고 하신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세면대가 젖지 않도록 하는 건 실천이 안되서 나오기전에 세면대를 수건으로 전부 닦아내고 나온다.
그리고 샤워문제도 있다.
초반에 내가 샤워만 하고 나오면 물 너무 많이 사용한다 그러시고 거울에 물기가 차면 얼마나 많이 물을 썼길래 거울이 이러냐며 타박아닌 타박을 주셨다. 하루에 한 번 머리감고 샤워하는게 왜 문제가 되는 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냥 빨리 빨리 하고 나와버린다. 덕분에 화장실에는 시계도 달렸다.
그래도 좋은 것도 있다. 음식!
작년에 프랑스 갔을 때 입에 안맞는 음식들이 많아서 좀 고생을 했었기 때문에 먹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rice를 먹긴 하는데 우리나라랑 해 먹는 방식이 너무 달라서 먹기 힘들었다... 그리고 난 평소에 한국인은 정말 쌀밥을 먹어야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다행히 할머니가 하와이 분이셔서 쌀밥을 잘 해드시고 김치도 먹으셔서 아침마다 냉동실에 얼려 놓은 쌀밥을 데워먹고 냉장고에는 할머니 친구분이 만들어 주신 싱싱한 김치가 있다.
얼마전에는 한인마트에 가서 한바탕 쓸고 왔다..
나름 엄선해서 필요한 것들, 정말 먹고 싶은 것들만 산 것 같은데 계산대에 전부 올리고 나니 120달러가 찍혔다.... 안그래도 생각보다 이것저것 돈 나갈 데가 많아서 벌써 처음 두달 용돈으로 받은 500~600달러를 다써버렸는데... 결국 카드로 지불했다. 초반이라 그런거겠지..? 앞으로는 돈 쓸일이 없었으면 좋겠다.ㅠㅠ
이 곳 Eagle River High School에 다닌지도 4주째가 되었다.
아침마다 혼자 알람 맞춰서 5시에 일어나서 씻고 밥 찾아 먹고 침대 정리하는 모습을 우리 부모님이 본다면 정말 감격하실 거다. 절대 한국에서 이래본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은 아침이라고 했지만 사실 밤에 학교 가는 기분이다.
아침 6시 40분에 스쿨버스 타러 5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데 여기는 해가 늦게 떠서 그 시간에 밤인것 처럼 깜깜하기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무서워 죽겠다.
손전등을 키고 가지만 여전히 깜깜해서 거의 잘 보이지 않는다. 추운데 무섭기까지ㅠㅠ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데 정말 내가 그러고 있는 것 같다. 초반에는 마음을 굳게 먹으려고 해도 아침에 눈 뜰 때나 한국에 있는 부모님, 친구들이 생각날 때는 정말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 학교에서 60명이나 되는 국악 오케스트라 악장을 하고 있었는데 큰 대회를 1주일 남겨두고 미국에 와버려서 처음에 못다한 책임감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출국 3일 전에야 배정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친구들이랑 국악부 후배들한테 미국에 가는 사실을 출국 전 날, 그러니까 학교를 그만두기 전 마지막날에 알려줬기 때문에 다들 많이 서운해했다. 여름방학때도 쉬지도 못하고 반 년동안 열심히 준비한 대회를 하고 함께 하지 못하고 후배들이랑도 친해질만하니까 떠나는게 너무 아쉬웠다. 응급처치도대회도 앞두고 있었는데... 수학여행도 있고... 아쉬운 것 투성이다. 대회랑 수학여행은 진심으로 꼭 가고 싶었는데ㅠㅠㅠㅠ
이렇게 한국에서 하고 싶던 것들, 한국에 있었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할때마다 너무 섭섭하고 슬펐다. 그래도 더 큰 일들을 하기 위해서 미국에 오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했고 이 기회를 잡았으니까 돌아가는 날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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